본문 : 마28:1-10절
제목 : 이제 갈릴리로 갑시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로마의 바티칸 궁정에는 유명한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피에타(Picta)라는 조각품이 있습니다. 그 작품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시체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조각한 것으로 미켈란젤로가 죽기 이틀 전까지 조각했다는 걸작품입니다. 이를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로마 바티칸 궁정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 작품의 모습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일생이 끝났다면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라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슬픔의 종교요 무덤으로 끝나야만 하는 종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사흘만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므로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 구원의 종교가 된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심과 특별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갈 것을 지시’ 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부활을 믿는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먼저, 1절을 보면, ‘안식후 첫날’ 이라고 언급합니다. 안식후 첫날이 언제입니까? 예수님이 죽으시고 3일째 되는 날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님이 금요일에 죽으셨고, 주일 새벽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계속해서 보시면,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에 갔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에수님께 향유를 부었던 여인이며, 다른 마리아는 아마도 야고보의 어미니 마리아일 것입니다. 이 두 명의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에 갔습니다. 그런데 이 두 명의 마리아가 정말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즉, 큰 지진이 일어나며 천사가 무덤 문을 열어둔것입니다. 그리고 그로인해 로마경비병들이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그때, 5-7절을 보면, 천사가 2명의 마리아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과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이 부활하셨음과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할 것을 명하게 됩니다. 그리고 9-10절을 보면, 집으로 가던 2명의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예수님으로부터 다시한번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갈 것을 전하라’는 지시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묵상해야 할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이 묵상할 것은, “예수님의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인 누구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2명의 마리아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두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를 제자들에게 전하라는 증인으로서 임무를 받은 첫 번째 사람들입니다. 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2명의 마리아를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신 것은 매우 뜻밖의 일입니다. 물론 지금 21세기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문화로 보면 별로 뜻밖의 일이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당연할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에 신앙의 열심은 남자보다 여자들에게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AD1 세기 2000년전의 유대문화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오늘 본문을 보면, 매우 뜻밖의 일, 이해할 수 없는 사건임을 알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시대는 남녀평등을 넘어, 남존여비(남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자의 비위를 맞는 시대?), lady first 시대이지만, AD1세기 유대사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자들이 지금처럼 대접받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당시는 남성위주의 사회었고, 여자는 공 예배에도 참석할수 없었으며,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의 대화도 금지되었고, 여자는 성경에 손을 댈수 없는 존재이었고, 남자의 재산의 일부이며, 이혼에 대한 결정권도 없었던 존재입니다. 더욱이 당시 여자는 증인이 될수 없는 존재로서 아무런 법적 효력을 가지지 못한 존재였습니다. 심지어 유대인들의 감사 기도중 하나가 ‘유대인으로 태어남에 감사하고 여자로 태어나지 않음에 감사한다’는 기도문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것이 2000년 유대땅에 살던 여자들의 위치였습니다. 이런 당시 여자의 위치를 본다면, 부활의 증인으로 2명의 마리아를 삼으셨다는 것은, 쉬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아무런 증인으로서 효력도, 증인으로서의 자격도 없는 여자들을 그토록 중요한 부활의 증인으로 세우셨을까요? 만일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한 로마의 총독이 빌라도를 부활의 증인으로 세웠다면, 예수님을 죽이려고 주동한 대제사장을 부활의 증인으로 세우셨다면, 당시 유대땅을 통치하던 2-3명의 분봉왕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세웠다면, 또는 로마의 황제를 부활의 증인으로 세웠다면, 얼마나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믿어줄 수 없는 여자를을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시고 부활을 증언하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우리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즉, 당시 아무런 힘도 없었고 증인으로서 효과도 발휘할 수 없었던 여인들이 부활이 증인이 된 것처럼, 스스로 못났다고,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모두도 부활의 증인이 될수 있다는 점과 누구도 부활의 증인이 되는 일에 예외는 없다는 점을 교훈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이라면, 많이 배웠든, 적게 배웠든, 가진게 많든 적든, 믿음이 좋던 그렇지 않던, 모두가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2명의 마리아를 부활의 첫증인으로 세운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부활의 증인이 되고 있습니까? 더 이상 핑계가 아닌, 증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2.어떻게 부활의 증인 될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을까요? 만나는 사람들에게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라고 말하고 다녀야 할까요? 물론, 말로도 증인의 역할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에게마다 예수님의 부활을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과학으로 규명할 수 없는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정신 나갔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할까요? 2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여러분의 구별된 삶으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즉, 죽음 이후에 영원한 생명, 천국의 삶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이 전부인줄 알고 살아갑니다.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그렇다면 부활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 다른 삶, 구별된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정말스러운 환경속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모습으로, 어떤 고난과 시련속에서도 낙심지 않음으로, 부족함속에서도 감사함으로, 미움과 시기를 이겨내는 모습으로, 높아짐이 아닌 낮아지는 모습으로, 욕심이 아닌 나눔의 모습으로, 대접받은 아닌 섬기는 자의 모습으로..., 등 이런 구별된 모습으로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의 삶의 이유를 찾게 될 것이고, 결국,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여러분의 변화된 삶, 또는 변화되어 가는 삶으로만 가능합니다. 마치 효과 좋은 약을 알리는 것과 같습니다. 아주 좋은 약이 있다고 가정해보십니다. 어떻게 그 약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요? 말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내가 먹었더니 몸이 정말 좋아졌더라! 그러면서 팔굽혀 펴기를 100번을 하면 사람들이 약의 효과를 믿을 것입니다. 변화된 모습, 호전된 모습을 통해 약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부활이 여러분에게 가져다준 축복이 무엇입니까? 죄인에서 의인이 되었으면, 죄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지옥갈 사람이 천국에 갈 사람이 되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새로운 존재, 전혀 새로운 삶을 살게 만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의 본질은 ‘변화’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가장 큰 변화는 무엇입니까? 생명을 얻고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는 방법 역시, 우리의 변화된 삶, 변화되어 가는 증인의 삶이 가능한 것입니다. 예를들면, 예수님 당시 많은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난 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당시 예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의 삶이 완전히 새롭게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겁쟁이던 사람들이 담대해지고, 욕심쟁이들이 자신의 것을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누고 베풀게 되고, 이기적인 사람이 사랑의 사람이 되고, 이웃에게 무관심하던 사람들이 이웃을 주목하는 사람들이 되고, 거짓말쟁이가 정직해지고, 절망 중에 있던 사람들이 기쁨의 사람이 되고..., 등 이러한 사람들을 보며, 주변의 사람들은 이들을 주목하게 되었고, 그들이 그렇게 변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가운데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예수라는 이름과 예수님의 부활의 메시지가 그들의 마음에 믿음을 갖게 한 것입니다. 이런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어지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들이 부활의 증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부활의 증인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변화된 모습, 변화된 삶을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더욱 변화된 사람이 되고, 변화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삶을 고쳐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참된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부활의 증인으로서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3.갈릴리로 가십시오!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묵상할 것은,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7절을 보면, 천사가 2명의 마리아에게 제자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주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말과 함께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갈 것을 말하라’ 는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10절을 보면, 2명의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도 동일한 메시지를 받습니다. 즉, ‘갈릴리로 가라’ 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주신 명령은 ‘갈릴리로 가라’는 점입니다. 물론, 갈릴리로 가라는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도 주신 동일한 메시지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실까요?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사 먼저, 갈릴리는 어떤 곳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과연 갈릴리는 어떤 곳인가요?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신 곳이며, 처음으로 기적을 일으킨 곳이며, 주된 사역의 장소였고, 많은 제자들을 부르신 장소이기도 합니다. 여기만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로서 실패한 제자들에게 다시금 새출발을 하게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의 만남 가운데 첫 부르심의 장면을 연출하는 모습들이 소개됩니다. 예를들면, 요21장을 보면, 물고기를 하나도 못잡은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배 오른편으로 그물을 던지라! 그리고 순종한 결과 153마리를 잡게 됩니다. 첫 부르심의 장면과 일치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3번 묻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다시한번 제자로서의 삶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릴리로 가라는 말씀에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특별히 갈릴리라는 지역은 사람들에게 소외와 멸시가 되던 곳입니다. 심지어 유대의 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람들은 갈릴리를 ‘이방의 갈릴리여(요7:41절)’ 라고 불렀던 곳입니다. 이 정도로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소외당하는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바로 갈릴리였습니다. 결국, 부활하신 예수님은 소외와 멸시의 장소로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말씀도 부활의 증인으로 여자를 삼으신 것 만큼이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갈릴 리가 아닌, 예루살렘이나 로마로 가는게 더 굉장한 이야기가 되고, 전도에도 더 효과적일 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제자들이나 무리들은 갈릴리가 아닌, 예루살렘이나 로마로 갈 것을 더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란듯이 큰 소리를 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도 갈릴리로 갈것이며, 제자들에게도 갈릴리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하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말씀속에 신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 를 말해주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결코 과시하고 자랑을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과시하고 자랑하고 싶어할 때가 참 많습니다. 예를들면, 신앙의 연수를, 신앙의 경험들을, 신앙의 수고들을..., 그러면 안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들면, 얼마짜리 건물이고, 성도는 몇 명이고, 헌금은 한달에 얼마나 되고, 목사님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고, 우리 교회에 연예인 다니고, 강대상은 얼마짜리이며, 선교사를 몇 명 파송하고...,등 자랑하고 과시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랑거리를 위해서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역시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자와 교회는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자랑으로 가면 안됩니다. 신앙생활이 결코 자신을 과시하고 자랑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갈릴리로 가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주님의 눈이 향하는 곳을 보고, 주님의 마음이 향하는 곳에 마음을 두라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우리 주변의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람들, 병들고 아픔속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돕고 위로하며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갈릴리로 가라는 예수님의 의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날마다 다시 시작하십시오! 절망하고 포기하는 신자가 되지 마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의 눈과 마음이 향하는 곳을 주목하시고, 더 많은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예수님은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본문과 삶
1)그리고 우리 모두를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2)그러므로 우리들은 부활의 증인이 되기 위해 날마다 자신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3)그리고 무엇보다 자랑과 과시의 신앙생활이 아닌, 섬김과 사랑을 목적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부활의 증인이 됨으로, 여러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부활에 참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