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요12:1-8절
제목 : 예수님의 죽음을 믿는다면?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돌아오는 주일에 성찬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성찬식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떤 사람은 성찬식의 이유를 그 동안 지은 죄, 묵었던 죄를 용서받기 위함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명절 때 목욕탕가서 묵은 때를 빼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들이 예수님께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하고 나를 위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순간 사실은 모든 죄를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들을 하나님께서는 의인이라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매일마다 회개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의 용서받음이 목적인 아닌, 성화와 거룩을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성찬식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이 나를 위해 고난과 죽으심을 당하셨음을 다시한번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결단하기 위해 하게 됩니다. 이런 마음으로 주일 성찬을 준비하기 바랍니다.
1) 연결 –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죽음을 믿는 우리들에게 주님이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가를 ‘오늘 본문의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확인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예수님! - 섬김
먼저,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있는 문둥이 시몬의 집에 있을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 동쪽으로 약 3.2km에 위치한 아주 가난한 마을로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자주 기도하셨던 장소인 감람산(겟세마네)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한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내용입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나사로의 누이이며, 마르다의 동생인 마리아입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향유를 붓는 모습을 보면, 가룟유다를 선봉으로 제자들이 마리아를 비난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를 칭찬하시고, 제자들을 꾸중하셨습니다.
여기서 첫번째, 생각할 것은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1절을 보시면,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니’라고 말을 합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이 죽으시기 6일전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죽음을 코 앞에 둔 이런 시점에서 예수님께서 하고 계신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예수님은 잔치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아마도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난 일로 인해 잔치를 베풀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예수님께 어떤 기대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또한 함께 모였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병든자,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진자, 주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을 많이 모여 있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은 만나고, 함께하고,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고 계신 것입니다. 참 놀랍습니다. 만일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죽는 날을 알고, 그 날이 6일 정도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예수님처럼 이웃을 만나고, 함께하고, 그들을 필요를 채우고, 돌보는 일 곧 섬김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아마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이웃과 함께하고, 이웃을 돌아보고 섬기고 계십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혹시 자신의 죽음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자신이 죽임을 당하실 것을, 특별히 유월절에 그 죽음이 이루어질 것을 분명히 알고 계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웃을 위한 섬김의 삶을 중단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온 인류를 위해서, 특별히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까지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들이 배워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정말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음을 믿는다면, 자신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삶을 버리고 주님과 같이 이웃을 섬김의 삶을 소원하면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이웃을 위한 섬김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이웃을 나몰라라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난 3일여간, 또는 지난 3월 한달을 생각해봅시다. 이웃을 위해서 섬기신 일이 있습니까? 성경은 구약과 신약 할 것 없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에 대한 책임이 있음과 이웃을 섬기는 삶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먼저, 창18장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 성을 심판에 대한 예고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가 나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했던 말이 무엇입니까?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합니다’입니다. 그러면서 의인 50, 45, 40, 30, 20, 그리고 의인 10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의인 10인을 인하여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소돔성에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졌습니다. 그렇다면, 소돔성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은 것은 누구때문입니까? 그곳에 살던 악인들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의인 10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소돔성에 살던 롯의 가족들이 믿는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5장에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나’ 라고 역시 세상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히10:24절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 더욱더 그리하라” 고 섬김의 삶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서로를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마땅한 것입니다.
어느 단체에서 우리나라 초등학생 109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과반수가 넘는 초등학생들의 53.6% 가 "주변의 불우한 이웃에 대해 관심이 없다" 라고 응답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어린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조사 결과는 현재 우리 사회가 이웃에 대해 무관심하다 는 것,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회가 되어 간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면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음을 믿는다면, 예수님처럼 나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섬길 줄 아는 사람을 살아야 합니다.
2.마리아 – 아낌없는 헌신
두번째 살펴볼 인물은 “마리아”입니다. 3절을 보시면,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지금 마리아는 오빠 나사로의 부활을 기뻐하는 잔치에서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부은 향유는, “지극히 비싼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 향유의 구체적인 명칭은 “나드향”이라고 말을 합니다. 나드향이라는 것은 인도산 나드라는 식물의 뿌리에서 얻은 향유로서 매우 값비싼 기름입니다. 그래서 왕과 같이 귀한 사람들에게 선물로 바쳐질 정도로 귀한 것입니다. 그리고 5절을 보면, 이 향유의 값이 300데나리온 이라고 기록을 합니다. 요즘식대로 말한다면, 1년 연봉에 해당하는 매우 큰 금액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향유의 값이 아니라, 이 향유는 마리아가 결혼을 위해 준비해 놓은 것입니다. 당시 결혼에서 중요한 것은 지참금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리아에게 이 향유는 자신의 인생이며, 자신의 미래이며, 그녀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마리아는 주님께 모든 것을 헌신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그 값진 향유를 부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깝지 않았을까요? 그 값진 것을 드릴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자신의 죽었던 오라버니를 살려주심에 대한 감사의 마음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껏 예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주님께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아낌없이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리아의 헌신의 모습을 통해 우리들이 배워야 할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우리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믿는다면, 우리들 역시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 가운데 우리들이 왜 주님께 아낌없이 헌신해야 하냐고 물을 분이 있습니까? 그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우리 주님이 먼저 우리를 위해서 조금도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으로서의 권리를 아낌없아 주셨고, 십자가에서 몸과 피 한방울까지 그리고 목숨가지 다 주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을 향한 은혜와 사랑도 아낌없이 다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께 아낌없이 헌신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 모두 신앙의 중요한 원리를 알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 신자들의 삶의 이유가 ‘주님이 우리를 위해 먼저 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해야 한다라는 원리’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우리를 먼저 섬기셨기에 우리도 주님을 섬기고, 주님이 우리를 위해 먼저 희생하셨기에 우리도 주님을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고, 희생하고, 용서하는 모든 이유 역시, 주님이 우리에게 먼저 그렇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이런 마땅한 삶을 살지 않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부정하는 행위이며, 감사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들에게 아낌없었던 것처럼, 우리들 역시 주님을 위해서 아낌없는 헌신을 할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아낌없는 헌신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닙니다. 아낌없는 헌신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까지 기쁘게 합니다. 오늘 본문에 마리아가 깨트린 향유를 상상해보십시오! 그 집안이 온통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했을 것이고, 모든 사람 그 향기에 감동했을 것입니다. 헌신도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을 믿는 여러분 모두가 아낌없는 헌신의 향기를 나타내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3.제자들 - 희생
이제 제자들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5절입니다. 보시면,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고 말을 합니다. 가룟 유다가 한 말입니다. 그러나 마26:8절을 보면, 모든 제자들이 보고 분하게 여겼다고 말을 합니다. 지금 제자들은 향유를 부은 이 여인을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허비하느니,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좋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게 본심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그래도 제자들의 신앙이 참 많이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난한자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전까지만 해도 자기들 밖에 모르는 매우 이기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2명 사이에 항상 누가 크냐? 라는 다툼이 끊이질 않았던 것입니다. 그랬던 제자들이 이웃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참 대단한 발전입니다. 우리도 이와같은 신앙의 발전이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제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이해할수 없었고, 예수님의 희생이라는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점은 12제자들을 대표한 가룟 유다의 모습에서 확인 할수 있습니다. 즉, 마26장을 보면, 이 사건 이후이 있은 후 얼마후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은30에 팔기로 했습니다. 은 30은 120데나리온으로 노예 한 사람의 값입니다. 그렇다면, 유다는 왜 예수님을 팔았을까요? 돈 때문일까요? 저는 아닐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만일 돈 때문이라면 대제사장이 제시한 은 30에 동의 했을까요? 더 많은 돈을 요구하지 않았을까요? 돈이 목적이라고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들과 당시 정치인들의 최고 관심사가 예수님을 잡아 죽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부르는게 값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판것은 돈이 목적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예수님의 사역의 방법(자기희생)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종종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에 죽겠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 이후에는 더욱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향유를 부은 여인을 칭찬하시면서 자신의 죽음을 또다시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는 이런 예수님의 태도에 대해 분노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자극해서 다른 방법을 선택하게 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을 판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런 저항없이 붙잡히셨고, 사형선고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본 유다는 자살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들과 유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와 너무 똑같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역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지만, 어디서든지 손해보고 희생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자신이 손해보지 않고, 희생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예수님의 희생적인 죽음을 믿는다면, 우리도 어디서든지 희생의 삶, 한 알의 밀알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어디서든지 희생의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한 알의 밀알이 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예수님의 죽음을 믿는 다면, 반드시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님의 죽음을 믿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삶, 3가지를 묵상했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는, 섬김입니다. 둘째, 아낌 없는 헌신입니다. 셋째, 희생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3가지의 삶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계산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5절을 보면, 향유가 부어짐과 동시에 그 값어치를 계산해 냈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평상시에도 항상 계산하는 사람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계산적인 사람이 되면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도 생각보다 계산적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예를들면, 십일조의 문제, 새벽예배의 문제, 전도의 문제, 주일을 지키는 문제, 내 생각을 포기하는 일, 내 주장을 내려 놓는 일, 양보하는 일, 분주한 일과 중 묵상하는 문제, 이웃을 돌아보며 돕고 섬기는 문제..., 둥 그러나 우리들이 계산적인 사고를 버리면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여러분 모두 계산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가서 하나님이 마음에 주시는 감동을 따르는 도전,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도전을 해보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에게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 여러분에게 향유의 향기와 같이 은혜로운 향기를 발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마음에 주시는 감동을 따라 살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계산할수 없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계산할 수 없는 은혜와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음을 믿고 고백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본문과 삶
1)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2)그것은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3)섬김, 아낌없는 헌신, 희생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계산적인 신자가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과 성령의 감동을 따라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