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민22:21-35절
제목 : 영적인 민감함이 필요합니다!
1.막으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은 발람선지자가 모압 왕인 발락의 초대를 받고 길을 가던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조금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니다. 먼저, 6절을 보면, 모압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서 발람선지자를 초대합니다. 그러나 12절을 보면, 하나님은 모압왕 발락에게 가지도 말고, 이스라엘을 저주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21절을 보면, 발람은 모압사람들을 따라 모압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그리고 22절을 보면, 발람이 모압사람들을 따라가는 것을 보시고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가는 길을 막기 위해 천사를 보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이 보낸 천사를 아무도 보지 못하고, 오직 발람선지자가 탄 나귀만 보게 됩니다. 그래서 23절을 보면, 겁을 먹은 나귀가 길을 벗어나 밭으로 들어갑니다. 자꾸 담에 기댑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리에 주저 앉아 버립니다. 그러자 화가난 발람선지자가 채찍과 지팡이도 나귀를 때립니다. 그런데 그때 나귀가 ‘왜 나를 3번이나 때리냐고, 내가 언제 이런 적이 있냐고’ 말을 합니다. 그 순간 31절을 보면, 천사가 발람의 눈을 밝혀 모든 상황을 보게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이 첫 번째로 묵상할 것은, ‘길을 막으시는 하나님’ 에 대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발람선지자가 발락의 초대를 받고 길을 갈 때, 하나님께서는 발람이 가는 길을 막으셨습니다. 22절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어 서니라’ 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32절에서도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라고 말을 합니다. 또, 34절에서도 ‘당신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발람선지자의 가는 길을 왜 막으셨을까요? 그 이유는 다시 32절을 보면, 발람선지자가 가는 길이 사악한 길, 옳지 못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 발락이 발람선지자를 초대한 이유는 발람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해를 끼치게 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발람의 길을 막으신 것처럼, 우리들이 가고자 하는 길을 막으실 때가 있고,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막으실 때가 있고, 우리들의 계획을 막으실 때가 있고, 우리의 바램과 소원을 막으실 때가 있습니다. 물론, 단 한번만 막으시는게 아니라 발람의 경우처럼 연속으로 막으실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막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길을 가게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해, 우리의 안전을 위해, 우리의 행복을 위해, 우리의 복됨을 위해..., 그렇습니다. 우리를 위해 가고자 하는 길을 막으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다양한 방법으로(양심의가책, 사건과 사고, 갈등, 누군가의 권면, 심지어 나귀...,등) 막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막으실 때,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원망과 절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2.영적 민감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께서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길을 막으실 때가 있다는 점을 묵상했습니다. 물론, 반대로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시온의 대로처럼 여시기도 하는 분입니다.(홍해바다, 여리고성, 아브라함의 노종) 그런데 이제 우리들이 생각할 것은, 우리들 역시 발람과 같이 하나님이 우리의 가는 길을 막고 계시는지, 열어두고 계신지를 분별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점에 대해서 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3번이나 발람이 가는 길을 막으셨습니다.(23,24,26절 / 28절) 그러나 발람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가는 길을 막고 계시다는 것을 전혀 깨달지 못한 것입니다. 과연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발람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하나님이 여실 것인지 막으실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무엇인가를 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동의하시는지? 하나님께서 길을 여실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이 있습니까? 혹시, 무관심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안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이 동의하시는지 반대하시는지? 에 대한 관심을 갖어야 합니다. 둘째로, 발람은 영적인 민감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간섭과 인도하심에 대한 민감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지자임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민감함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 발람선지자가 모압왕 발락에게 가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물질적인 욕심 때문입니다. 즉, 7절을 보면, 모압왕이 제시한 상당한 은 금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욕심에 사로잡히면 영적인 민감함을 잃고 하나님의 간섭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영적인 민감함을 가지고 계십니까?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느끼십니까? 때로는 하나님이 막으신다는 것을 느끼십니까? 어떤 일 가운데 하나님께서 뭔가를 말씀하시려고 한다는 것을 느끼십니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여러분도 영적인 민감함을 잃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영적인 민감함을 잃었을까요? 그것은 발람선지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이고, 영적인 것에 대한 거룩한 욕심은 없고, 도리어 세상의 것들에 대한 욕심만 많기 때문입니다.
3.영적 민감함을 가진 아이로 키우십시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영적인 민감함을 회복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발람선지자와 같은 잘못되고 위험한 길을 가지 않고, 더 올바른 길, 더 안정한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맡기신 자녀들을 발람선지자처럼 키우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영적 민감함을 가진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이런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만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기도만하면 다 된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러분이 자녀들이 뭔가를 하고자 할 때마다, 자녀들에게 ‘그 일, 그 계획이 하나님도 동의하실까?’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할까?’ 묻고, 함께 이야기 해주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간섭하시고 더 복된 길로 인도하시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우리는 영적 민감함을 갖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를 영적으로 민감한 신앙인으로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발람의 길을 가지 않고, 시온의 대로를 걷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