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건강, 돈, 취업, 성적 등의 문제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든 세상 속에서 나를 도와주는 가정이 있다면 그만큼 축복 받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2009년 한국리서치에서 만약 나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의지되는 대상은 누구인가?라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여기서 40%만이 가족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래고 믿고 의지 할 곳이 없다는 사람이 37.1%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는 종교, 이웃, 직장동료 등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 중에 힘든 것 하나가 바로 가족의 문제라고 생각되어집니다. 부모와 자녀간의 문제, 부부간의 문제, 그리고 자녀들간의 문제 등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런 가정의 문제로 고민하는 아브라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은 사라를 통해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지만 이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라의 여종 하갈을 첩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창세기 21장을 보시면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들 이삭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리고서부터 사라와 하갈 그리고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이삭을 놀리게 됩니다. 그래서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그 여종과 아들을 내쫓으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첩과 아들로 인해 근심하게 되어집니다. 이런 갈등은 하갈이 첩으로 들어와서 임신한 후 사라를 모욕하는 장면이 창세기 16장을 통해서도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본처와 첩에 갈등이 계속되면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묵상합니까? 보통 이렇게 본처와 첩의 갈등을 이야기하면 가정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첩을 얻어서 가정의 불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갈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일이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아브라함의 아내로서의 권리와 그리고 아들 이스마엘의 권리를 묵살당하고 쫓겨 납니다. 생각해봅시다. 아무리 하갈과 이스마엘이 잘못을 했다 한들, 그들을 왜 쫓겨냅니까? 이혼이라고 했으면 위자료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형제들이 싸운다고 해서 형을 내쫓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내쫓으라고 한 사람은 사라였고 그 말대로 하라는 것은 하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처가 첩을 싫어한다면 내쫓으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라고 묵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첩을 얻어서는 안된다라는 교훈으로 이 성경을 묵상한다면 어디선가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창세기의 본문을 오늘 읽었던 본문과 함께 이해할 때 더 넓게 말씀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집니다.
1. 율법주의자
이렇게 사라와 하갈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인 갈라디아서에 대한 배경을 설명해야 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게 편지를 쓰게 된 것은 바로 그 교회 안에 율법주의자들이 성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주의자들을 반박하는 편지를 보낸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율법주의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율법주의자들은 유대인들이었는데 그들은 율법의 행위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유대인만이 될 수 있고 이방인이 될 수 없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에 바로 이방인도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교회서는 이런 것을 이용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을 율법폐기론자로 합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이 준 자유를 이용해서 방종의 기회로 삼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이 자신 자유를 남용하여 육체의 기회로 삼을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구원파같은 이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배경을 가지고 21절에 보시면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 복음과 율법의 관계
그 이후에 바울은 사라와 하갈을 비유로 하여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2절에 보시면 하갈은 여종으로 사라는 자유 있는 여자로 이야기합니다. 그러고선 하갈의 아들은 육체를 따라 낳았고, 사라의 아들은 약속으로 말미암았다고 23절을 통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24절을 보시면 이 여자들은 두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갈을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26절에서는 사라를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자유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보면 바로 하갈과 사라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은 단순히 두여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성경에 의하면 각각 ‘율법’과 ‘복음’을 상징하는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하갈과 사라의 아들들은 단순히 본처가 낳은 아들과 첩이 낳은 아들의 문제가 아니라 ‘율법으로부터 탄생한 종’과 ‘복음 즉 하늘로부터 탄생한 자유자’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유자가 유업을 받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29절을 보시면 육체를 따라난 자 즉, 이스마엘이 성령을 따라 난 자 즉, 이삭을 박해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다시말해 하갈과 사라의 관계는 단순히 가정의 불화를 넘어서서 율법을 따라 난자와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서 복음의 자녀, 자유자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더 쉽게 말해 하갈과 사라의 이야기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보여주는 구속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은 율법으로 즉, 행위로서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만약 행위로서 구원을 받는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행위로서 죄인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서는 안됩니다. 우리들은 죄인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심으로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죄인의 습성을 버리고 의인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믿음의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들도 믿음이 좋다는 것에 대한 오해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행동으로 드러날 때,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 때로는 기도를 오래하거나 크게 한사람, 때로는 정직해보이고 왠지 경건해 보이는 사람을 믿음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좋다라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유명한 '무디'목사님이 간증한 내용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믿음을 달라고 기도한 시간만 합쳐도 몇 달은 족히 될 것이다. 내 생각으로 믿음이란 번개불과 같이 어느 날 나를 확 달아오르게 할 어떤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수없이 기도해도 믿음이 오지 않았다. 그런 어느 날 나는 로마서 10장을 읽다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란 구절을 보았던 것이다. 그 즉시 난 성경을 부등켜 안고 믿음을 구했다. 그리고는 성경을 다시 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시작했더니 믿음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29절을 보면 믿음이 좋다라는 사람은 바로 성령을 따라 난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자, 즉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가는 자일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을 다시금 확인 하시면서 과연 내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간절함이 있는지를 점검하시기를 소망합니다.그래서 겉으로만 들어나는 신앙인이 아닌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신자가 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갈과 사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는 율법과 복음의 관계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사라의 아들이 택함을 받은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심을 이야기하시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믿음은 점검해보자고 이야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