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많은지 적은지에 대한 테스트가 있습니다. 제가 준비한 그림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이 그림을 보시고 많이 움직이면 스트레스가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적게 움직이거나 아에 움직이지 않는다면 스트레스가 적다고 합니다. 제가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오늘 말씀은 쉼, 안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안식을 얻을려고 쉰다고는 하지만 제대로된 안식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바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안식을 주시는 부분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안식을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 봅시다. 본문은 노아 홍수 이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서 포도나무를 심게되었습니다. 그 후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서 장막 안에서 벌거벗었다고 합니다. 이때 그의 아들 함이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나가서 다른 형제들한테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셈과 야벳은 옷을 가져다가 뒷걸음으로 장막안으로 들어가 아버지에게 덮어줍니다. 노아는 잠에 깨어서 함이 한일을 보고 그에게 저주를 내립니다. 또한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을 내리게 됩니다.
이 본문을 볼 때 우리가 오류를 처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만 있는 술에 대한 개념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보고 술을 마시지 말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래서 노아를 “술 취한 늙은이의 추태”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제가 술을 마셔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덕을 위해서 술을 마시지 않기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고린도전서에서 우상제물에 관한 것과 같습니다. 당시 고기는 모두가 우상의 제물이었는데 이것을 먹고 안먹고에 대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때 바울은 자신은 우상제물을 먹고 실족하는 형제들을 위해서 먹지 않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먹고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럼 이본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1. 포도주
이 본문을 이해할려면 먼저 ‘포도주’에 대한 성경의 개념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고자 하면 술보다는 포도가 성경에 나온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고자하면 포도주는 ‘종말론적인 성격을 가진 음료’ 혹은 ‘안식의 실현과 관련된 음료’입니다. 신명기29:5-6을 보면 광야 생활 가운데 포도주를 금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바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11:4을 보시면 약속의 땅을 차지하였을 때 포도주가 허락되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포도에 대한 성경의 개념은 전 성경적으로 나오게 되어 있는데 이는 약속과 언약의 종말론적인 음료로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이 포도원, 포도나무를 통해서 이를 많이 언급하게 됩니다. 이는 신약성경인 요한복음을 통해서도 이야기 되는데 이는 저번주에 설교한 가나안 혼인 잔치 사건을 통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정결하게 하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은 바로 율법의 시대를 새시대로 바꾸게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표적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기 전에 신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을 성취하시는 종말론적 사건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다 이루었다라고 이야기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노아가 마신 포도주를 보고 술을 마시면 안된다, 술을 마시고 추태부리면 안된다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에 나오는 포도에 대한 개념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 안식이 임할 때 마시는 음료라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합시다. 우리가 무엇을 계획하고 그것대로 이루어질 때 파티를 합니다. 가족끼리 맛있는 식사로 고기를 먹기도 합니다. 회사 안에서 좋은 실적을 냈을 때 회식을 합니다. 때로는 학생들이면 시험을 다보고 나서 잘 봐서 먹는 피자처럼 생각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약속, 언약)이 성취되었고 이제 안식을 얻었기에 마시는 음료가 바로 포도주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계획을 하시고 계시고 그것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버림 받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계획아래 있고 노아에게 포도주를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주심을 기억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다는 것을 믿고 나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안식
노아라는 이름은 ‘안위’, ‘안식을 주는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5장 29절을 찾아보시면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라고 나옵니다. 다시말해 저주로 인해 수고롭게 일하던 시대에 안식을 주는 자였다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문맥으로 보면 홍수로 인해서 심한 고통을 당한 후 노아는 안식을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말론적 안식과 관련된 포도주와 함께 노아는 안식을 성취하는 자로서 한쌍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였다는 것은 악한 의미가 아니라 마시고 흡족하였다, 즐거워하였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포도주를 마시고 장막 안에서 누린 안식은 비판 받아야 할 것이 아닙니다. 안식에 대해서 더 이야기 해봅시다. 20절에 보시면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여기서 ‘심었다’라는 단어는 이는 창세기2:8에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에서 ‘창설하다’가 다른 의미로 ‘심으시고’랑 히브리어로 같은 단어입니다. 그래서 포도원을 심었다는 의미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안식을 주기 위해 에덴동산에 두신 것이랑 같은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노아가 벌거벗었다는 것은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벌거벗으면서 살아간 것과 같습니다. 또한 셈과 야벳이 옷으로 노아를 덮어주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주신 것이라는 비슷한 의미로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노아는 노아 홍수라는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안식을 성취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항상 안식, 쉼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노아는 어떻게 안식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방주를 만들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집에서 공부할 생각은 안하고 방에서 놀고만 있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애원을 합니다. “제발 공부 좀 하라”. “공부해서 무엇 하게요?” “그래야 좋은 직장잡고 일할 수 있지 않겠느냐?” 아들은 다시 묻습니다. “일해서 무엇 하게요?”, “그래야 돈을 벌수 있지 않겠니?” 아들은 다시 반문합니다. “돈 벌어서 무엇 하게요?”, “그래야 장가도 들고 집도 사지 않겠니?”아들은 또 묻습니다. “집을 사서 무엇 하게요?”, “그래야 편히 놀면서 여생을 살지 않겠니?” 그러자 아들이 대답합니다. “그럼, 지금이나 마찬가지네요” 이처럼 우리들은 항상 쉼에 대한, 안식에 대한 갈망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이루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참된 안식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줄 알아야 합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홍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함으로서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안식을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충성된 종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포도주에 대한 성경의 개념은 바로 종말론적인 성격, 즉 하나님의 계획과 성취에 관련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계획, 언약이 성취된 후 안식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홍수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함의 잘못을 이야기하면 아버지의 허물을 비웃은 것을 넘어서서 바로 하나님의 안식을 비웃은 자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했듯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노아가 받은 참된 안식을 여러분들 누리시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