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제가 sbs뉴스를 보다가 아나운서가 클로징 멘트로 한 말에 많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청소년이 남과 더불어 사는 능력은 36개국 중에 35등, 부모가 아이에게 남에 대한 관용을 가르치겠다는 의지는 62개국 중에 꼴찌라고 합니다. 이것이 세계최고 교육 수준을 가진 나라의 현실입니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나라의 현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점점 이기적인 세상이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이기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많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기도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욕심과 만족을 위한 이기적인 기도를 할 때도 많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어떤 기도를 하시기 원하시는지 나와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더욱더 은혜받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불의한 재판장이 나옵니다. 그 재판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장 이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재판장에게 갑니다. 얼마나 과부가 이 재판장을 귀찮게 했는지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늘 와서 나를 괴롭힌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 떼를 쓰며 하는 기도?
이 본문을 보면 우리들은 과부의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1절을 통해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과부처럼 끝까지 매달리면서 기도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으시는 것을 절대로 응답하시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과부처럼 떼를 쓰며 매달린다면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신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예를 들어 설명합시다. 자식이 너무나도 사탕을 많이 먹어서 이가 다 썩었습니다. 그러나 자식은 너무나 사탕을 먹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부모한테 떼를 쓰면 달라고 합니다. 이 때 부모는 자녀에게 사탕을 주겠습니까? 당연히 주지 않을 것입니다. 올바른 기도라는 것은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뜻을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본문의 주제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왜 이 본문은 오해하고 있었을까요? 바로 1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는 것은 본문의 주제가 ‘기도는 하지만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생기는 낙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자세히 보시면 ‘항상 기도할 것’과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 이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본문의 주제가 무엇일지 생각봅시다.
2. 우리의 원한을 풀어주시는 하나님
1절부터 8절까지 보시면서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저랑 자세히 본문을 봅시다. 3절에 “과부가 재판장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5절에 “이 과부가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라고 나옵니다. 이런 것들을 볼 때 자주 반복되는 단어가 바로 원한입니다. 그렇기에 본문의 주제는 원한을 풀어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더 주목할 것은 7절 말씀입니다.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믿는 자들의 원한을 참게 하시지 않고 곧바로 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자신의 백성들이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것을 버리지 않는 분입니다. 성경을 보시면 항상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또한 죄로 인해 고통 받는 우리들을 위해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고통받는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지금 고통당하고 계시고 있으십니까? 이럴 때일수록 더욱더 기도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고통 속에서 우리를 구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신자들이 받는 핍박과 박해
그러면 어떤 원한이 있길래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요? 그럴려면 우리가 앞의 구절을 보아야 합니다. 20-21절을 보시면 바리새인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물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22절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따로 말씀하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2절부터 37절에서는 마지막 날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인자는 갑자가 오실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본문과 연결되어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할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제자들에게 말하는 원한을 살만한 고통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해 마지막 날이 가까올수록 제자들이 받는 박해와 핍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많은 핍박과 박해 그리고 미움을 당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박해로 인해 낙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재판장이시기 때문에 자신의 백성이 고통당하는 것을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 비유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자녀들에게 임하는 어려움을 돌아보신다는 것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1553년 영국의 메리 여왕은 왕위를 오른 후 기독교인들은 심하게 핍박했습니다. 신앙을 지킨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죽음을 당했던 사람 가운데는 후퍼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후퍼는 평생을 가난한 이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었습니다. 후퍼가 화형을 당할 때 집행관이 신앙을 포기하면 살려주겠다면서 인생은 즐겁고 죽음은 고통스럽지 않냐?고 이야기합니다. 이때 후퍼는 그렇기도 하지만 신앙인은 영원한 기쁨의 삶을 살며, 비신앙인은 영원한 고통의 삶을 삽니다.라고 했답니다. 처음에 제가 얘기했듯이 세상은 점점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악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믿는 것만으로 우리들은 세상에서 고통 받고 있고 앞으로도 받을 것입니다. 생각해봅시다. 악한 세상 속에서 정직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학교에서, 직장에서 때로는 가정 안에서 정직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이런 마음을 지키기 위해 항상 기도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악한 세상 속에 살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계신다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려움들을 돌보신다는 약속을 잊지 않으셨기 바랍니다. 그리고 낙심하지 말고 항상 기도함으로서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 비유는 간청하는 기도보다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고통 받는 것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돌보신다는 것이 주제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항상 기도할 것과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한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이런 약속을 믿음으로 나아가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