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전9:16-18절 고린도전서 강해27
제목 : 무엇이 진정한 상(賞)인가?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이 잘 아는 이야기로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어떤 한 장로님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밤 자신이 천국에 가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장로님이 천국 문 앞에 도착해 보니,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려고 줄을 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국 문앞에서 천사가 한 사람씩 머리에 면류관을 씌워주고 있었답니다. 자세히 보니 자기 교회 성도 차례가 되었습니다. 천사가 성도에게 은으로 된 면류관을 씌워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차례 역시 자기 교회 집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금으로된 면류관을 씌워주었다고 합니다. 이제 이 장로님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 장로님은 내심 성도, 집사 보다 더 좋은 보석으로 된 면류관을 쓸 것을 기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천사가 개털로된 모자를 씌워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물었답니다. 왜 난 개털모자냐고! 그랬더니 천사가 하는 말이 넌 장로로 대접만 받았지 누구도 제대로 섬기지 않았으니 줄게 개털 모자뿐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는 분명히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 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이 상받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상’이라는 주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신자들에게 진정한 상은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여러분의 삶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상이 풍성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과연 상(賞)은 있는가?
우리는 지난 시간 바울이 분명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 묵상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묵상하려고 하는 것은, ‘소명의식을 가지고 소명을 잘 감당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상은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우리는 얼마 전에 자랑에 대한 주제로 묵상을 했습니다. 즉, 바울은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또 다시 자랑을 한다고 말을 합니다. 참 알다가도 모를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도 알다가도 모를 내용입니다. 먼저, 17절을 보면,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고 말을 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바울이 사도직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스스로 자의로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께 받을 상이 없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18절을 보면,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라고 말을 합니다. 지금 이 말은 상이 있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까?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은 17절에서 상이 없다고 말을 하면서, 18절에서는 상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상(賞)은 있을까요? 없을까요? 사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신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상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만약에 우리들이 천국에 가서 받을 상이 서로 다르다면(흔히, 금,은,개털모자) 그런 차별이 있는 곳이 과연 천국일까? 라고 말을 합니다. 이 말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 17절을 보면, ‘내가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지금 자신이 사도의 일을 하고 있지만, 상 받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사도되고 사도의 일을 하는 것이 자의로 한 것이 아니라, 부득불 한 것이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살아가는 것도, 우리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라, 하나님의 은혜주심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상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성경구절입니다. 예를들면, 마5:11-12절에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또한, 마6:1절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또, 마10:14절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고전3:8절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또, 빌 3: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또, 골2:18절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또, 히10:35절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또, 히11:6절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또, 계22: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고 말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 18절을 보면, 바울이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즉, 상이 없다고 말한 바울이 이번에는 상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기록을 근거로 상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야 할까요? 상이 없다고 생각해야 할까요? 상이 있다고 생각해야 할까요? 제 결론, 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신자들인 우리들이 생각하는 상, 우리들이 기대하는 상과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이것이 상에 대한 제 결론입니다.
2.진정한 상(賞)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진정한 상은 무엇일까요? 성경이 말하려고 하는 상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이 점을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보통 신자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상이 무엇인가를 확인해보도록 합시다. 무엇입니까? 아마도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상일 것입니다. 예를들면, 물질의 복, 건강의 복, 장수의 복, 자녀의 복, 사업의 복, 사람의 복, 근심 걱정이 없는 평안의 복..., 등 보통 세상 사람들이 소원하는 내용의 것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상은 그런 것과 거리가 멉니다. 예를들면, 만약 하나님이 주시는 상이 그런 세상적인것이나 현실적인 것이라면 믿음 좋은 사람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 모두 잘 살아야 하고, 모두 건강해야 하고, 자녀가 다 잘 되어야 하고, 염려와 근심 그리고 어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성경을 보십시오! 믿음이 좋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간 사람들 중에 어려움 없이 산사람은 한 사람이라고 있습니까? 단적인 예로, 바울을 생각해보십시오! 바울은 누구보다도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고, 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었고, 누구 보다도 헌신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무병장수, 운수대통, 인생대박..., 등 해야 했습니다. 정말 그런 인생을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도 사도로 부름을 받은 이후 거의 모든 순간속에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았고, 가문에서 쫒겨나고, 온갖 고생을 겪었고, 심각한 불질병도 있었고, 죽음의 위기도 수없이 겪었고, 억울함과 답답한 일을 많이 당했으며, 감옥에 오래도록 갇혔고, 믿었던 성도들에게 공격과 배신을 당했고, 그리고 결국, 순교로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과연 이런 인생을 살았던 바울을 세상사람들이 본다면, 복받은 사람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정말 불쌍한 인생, 불행한 인생,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에게도 묻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기를 소원하는 복이 바울이 겪었던 것들 입니까? 여러분은 바울이 겪었던 것들을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상으로 여기고 기쁜 마음으로 받을 자신 있으십니까? 그런 복만 받기를 축원할까요?? 이런 바울의 모습만 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세상적이고,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상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들이 소명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것 그 자체,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그 자체, 우리가 직분자로서 살아가는 그 자체가 상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18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라고 말을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사도로 산 것, 사도답게 산 것, 사도로서 부끄럽지 않게 산, 그 자체가 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려는 상입니다. 이 점을 3가지 본문으로 확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마20장의 포도원 품꾼 비유입니다. 이 본문을 보면, 포도원 주인이 우리 시간으로 오전 6시, 9시, 12시, 오후 3시, 5시에 품꾼을 부릅니다. 그리고 오후6시가 되어서 품삯을 줍니다. 먼저, 오후5시에 와서 1시간 일한 사람에게 1데나리온을 줍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3시간 일한 사람에게도, 6시간 일한 사람에게도, 9시간 일한 사람에게도, 12시간 일한 사람에게도 모두 1데나리온 씩 주었습니다. 이 비유를 우리식대로 말하면, 모태신을 가진 사람, 청소년기에 신앙을 갖은 사람, 청년의 때 신앙을 가진 사람, 중년에 신앙을 갖으신 사람, 그리고 인생 말년에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 신앙을 갖게 되었든 모두 같은 구원(결코 다른 구원을 받지 않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말이 억울하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난 모태신앙으로 재미없는 인생을 살았는데, 평생 즐기며 살다가 죽기 직전에 믿고 같은 구원을 얻는다면 억울하게 여길만도 합니다. 그렇다면, 평생 믿음생활을 한 사람의 더 나음은 무엇일까요? 받을 상은 무엇일까요? 바로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삶을 산 그 자체가 상이고 복인 것입니다. 이것이 이 비유의 핵심입니다. 둘째, 마25장의 달란트 비유입니다. 어느날 주인이 먼 길을 가기전에 3명의 종을 부르고 5, 2, 1달란트 맡깁니다. 그런데 5,2달란트 맡은 자는 정말 충성스럽게 일을 하여 5,2달란트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1달란트 맡은 사람은 땅에 묻어두고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훗날 돌아와서 결산을 하게 됩니다. 먼저, 5달란트 받고 5달란트 이윤을 남긴 종에게 칭찬을 해주고 더 많은 것을 맡기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 하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2달란트 받고 2달란트 이윤을 남긴 중에게도 칭찬을 해주고 더 많은 것을 맡기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 하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1달란트 받고 땅에 묻어둔 종에게는 책망을 하고 맡겼던 1달란트를 빼앗습니다. 결국, 5,2 달란트가 충성한 보상은 무엇입니까? 칭찬이고, 더 많은 일을 맡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더욱 충성한 5달란트 맡은 자에게는 빼앗은 1달란트를 5달란트 맡았던 자에게 더 맡깁니다. 이 비유 역시, 주인의 일과 즐거움에 더 참여하는 것,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상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 눅15장을 보면,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어느 아버지에게 2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줄 것을 요구하고, 결국 받아내어 먼 나라로 갑니다. 그곳에서 자기 마음대로 허랑방탕하게 살게 됩니다. 그리고 돈이 다 떨어진 후 후회하고 아버지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을 위해서 새 옷과 가락지아 새신을 신기고, 살찐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배설해 주었습니다. 그때, 일하고 집에 돌아온 1째 아들이 그 모습을 보고, 아버지에게 섭섭한 마음을 털어 놓습니다. 즉,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이 없거든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그때 아버지가 1째 아들에게 한 말이 무엇입니까?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었으니’ 라고 말을 합니다. 즉, 성실하고 착한 아들로 산 그 자체가 상이고 복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이 말하려고 하는 상 또는 복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이미 예수를 믿게 된 것 그 자체가 상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시간 그리스도인으로 산 것 그 자체,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 그 자체, 더 많이 하나님께 순종한 그 자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것 그 자체, 예배드리는 삶 그 자체, 말씀을 묵상하는 삶 그 자체, 기도하는 삶 그 자체, 봉사와 섬김의 삶 그 자체, 전도하는 삶 그 자체..., 등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바울이 얼마나 많은 상을 받은 사람인가를 알 수 있고, 상에 대한 모순의 문제들이 해결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중에, 이렇게 묻고 싶은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면,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복을 받는 사람들은 무엇입니까? 예를들면, 전도를 열심히 했던 하나님이 사업을 복주시고, 주의 일에 힘썼더니 건강을 주셨고, 교회를 위해서 물질로 헌신했더니 더 많은 물질을 받은 사람이 있다던데요..., 네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받은 것들은 상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그러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구약시대 제사장(목회자들)에게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주신 것은 상일까요? 아닙니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소명을 더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공급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3.상(賞)이 되는 삶을 삽시다!
우리는 지금까지 성경이 말하는 상(賞)이 무엇인가를 묵상했습니다. 이제 제가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합니다. ‘상이 되는 삶’을 더 많이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를들면, 혼자 있을 때에도 상이 되는 삶, 가정에서도 상이 되는 삶, 일터에서도 상이 되는 삶, 이웃안에서도 상이 되는 삶, 교회에서도 상이 되는 삶, 그리고 어디에 있든지 간에 상이 되는 삶을 살도록 힘쓰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상이 되는 삶인가를 늘 고민하고, 자신을 고쳐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성경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본문과 삶
1)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상은 결코 세상적이고,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상이 아닙니다.
2)도리어 우리들의 삶 자체가 상이 되는 것입니다.
3)그러므로 날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고민하십시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남은 인생을 상이 되는 삶을 살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