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전9:16-18절 고린도전서 강해26
제목 : 우리는 소명자입니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2013년도 7월 7일. 승객과 승무원 307명을 태운 아시아나 항공기가 센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도 중 추락하여 완전히 전소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탑승객 307명 중에 3명을 제외하고는 무사히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큰 사고임에도 거의 대부분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승무원들의 침착하고 발 빠른 대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당시 선임 승무원이었던 이윤혜씨의 역할이 대단히 컸다고 합니다. 이 승무원은 자신도 꼬리뼈가 부러져 제대로 걸을 수 없는 큰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염에 휩싸인 비행기 동체를 여러 번 오가며 쓰러져 있는 많은 승객들을 구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이 승무원이야 말로 정말 대단한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승무원으로서 소명의식이 없었다면, 위험을 감수하고 사람들을 구조하는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사도라는 분명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바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살며, 그로 인해서 하나님께 귀한 상을 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바울의 소명의식
오늘 우리들이 함께 묵상할 주제는 바로 ‘소명’입니다. 그렇다면, 소명이란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어떤 목적을 위해서 누군가에게 부름을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소명자란 어떤 목적을 위해서 부름 받은 사람이고, 소명의식이란? 어떤 목적을 위해서 부름 받았음을 확신하고, 그 목적을 항상 염두하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은 사도로서 분명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16절을 보면,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 임이라’ 고 말을 합니다. 즉, 복음을 위해서 사도로 부르심 곧 소명을 받았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17절을 보면,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고 말을 합니다. 역시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도라는 직분으로 부르심 곧 소명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은 바울이 사도로서의 분명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 본문 말고, 다른 성경에서도 바울 자신이 사도로서 분명한 소명의식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행22:21절을 보면,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즉,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 받았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갈1:1절을 보면,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이라고 같은 의미의 말을 합니다. 또한, 롬1:1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라고 말을 합니다. 그 외에도 바울은 자신의 서신서 대부분에서 자신의 사도로서의 분명한 소명의식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사도’로서, 특별히 하나님이 ‘이방인’을 위해서 자신을 부르셨다는 분명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도 소명의식이 있습니까? 제가 이렇게 질문하는 이유는,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모두도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내가 하나님께 소명을 받았다는 말이 이해가 안되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고작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만이 구원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은 무엇입니까? 구원은 소명 곧 하나님의 부르심 입니다. 조금더 구체적으로 예를들면, 구원이란 죄와 사망에 있던 우리들을 의와 생명의 자리로의 부르심 인 것 입니다. 또한 구원이란 죄의 종의 자리에 있던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로의 부르심입니다. 또한, 구원이란 사역으로의 부르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구원이 이를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 우리를 동참시켜 주신 것이 바로 구원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사역으로의 부르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소명자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꼭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있는 모든 곳이 바로 소명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여러분은 부모입니다. 그 자리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소명을 두신 자리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남편, 아내입니다. 그 자리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소명을 두신 자리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사랑하는교회 성도입니다. 그 자리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소명을 두신 자리입니다. 특별히 여러분은 교회안에서 성도, 집사, 권사, 교사, 목회자입니다. 그 자리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소명을 두신 자리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살아가는 가정, 그리고 다니는 일터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소명을 두신 자리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언제 어디에서든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소명자라는 확신을 갖고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2.소명의식이 중요한 이유?
이제 우리들이 생각할 것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소명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는 점입니다. 얼마 전 처지를 비관하여 술을 마시고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려던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파도치는 바다에 뛰어 들어 구조해낸 경찰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화염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시뻘건 불길 속에 뛰어든 소방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또, 철로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 걸고 철로로 뛰어든 철도공무원의 이야기들도 들어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세월호 침몰 당시 학생들을 먼저 구조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교사들의 이야기도 들어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죽는게 두렵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세상에 죽는게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더욱이 죽음의 자리로 자신을 내 던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경찰관이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경찰관이라고 해서 다 목숨걸고 시민을 보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방관이라고 해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불속에 다 뛰어드는 것도 아닙니다. 도리어 실망스러운 경찰관, 소방관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목숨걸고 시민을 보호하고, 목숨걸고 불속에 뛰어들 수 있을까요? 그것은 경찰이라는 소명의식, 소방관이라는 투철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소명의식을 갖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은 바울의 인생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바울이 사도로서 살아가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들이 여러 차례 살펴본 것처럼, 바울은 여러 가지 고난과 고생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고후11:22-29절 -매, 감옥, 온갖 미움, 위험, 굶주림, 쉬지 못함..,등) 뿐만 아니라, 바울은 지금 고린도교회 신자들에게 사도권을 의심 받고, 비난까지 당하고 있는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사도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고, 사도로서의 직분을 잘 감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과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바로 자신이 하나님께 사도라는 소명을 받았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1,2,3차 전도여행 및 로마전도여행을 했습니다. 그 기간이 얼마 정도였을까요? 대략 20년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여행을 20년 이상 한결같이 할 수 있다는 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20여년의 전도여행을 잘 감당 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일까요? 그것 역시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도로 부름 받았다는 소명의식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또, 사도바울은 정말 자랑 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예를들면, 가문, 학벌, 업적, 체험..., 등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자랑하지 않았고, 도리어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었던 근거는 또한 무엇일까요? 그것 역시 바울이 가진 사도로서의 분명한 소명의식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 외에도 바울이 고난의 순간마다, 위기의 순간마다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럴 때마다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도로서 소명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기억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위기의 순간마다 자신이 하나님께 부름받은 다메섹 사건을 언급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의 소명에 대한 깊은 인식이 있었고, 그 분명한 소명의식이 바울의 위대함의 근거일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분명한 소명의식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분명한 소명의식을 갖을 때, 그리스도인의 삶이 가능해지고, 직분자로서의 제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되고, 뿐만 아니라, 각자의 소명의 자리에서 잘 감당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들이 분명한 소명의식을 갖지 못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낼 수 없고 도리어 세상 사람들처럼 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분명한 소명의식을 갖지 못하면 사랑하는교회 성도와 직분자로서의 역할도 잘 감당 할 수 없고 방관자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소명의식이 없이는 여러 소명의 자리에서 잘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17절의 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라는 분명한 소명의식을 갖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삶, 충성된 직분자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소명을 잘 감당하려는 자에게는?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 할 것은, 그렇다면, “과연 소명의식을 가지고 소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무엇을 주실까요? 오늘 본문 18절을 보면,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상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상을 주십니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소명을 더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십니다. 예를들면, 부모로서의 소명을 확신하고 잘 감당하는 사람에게는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시고, 교회직분자로서의 소명을 확신하고 잘 감당하려는 사람에게는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과 같이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시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소명을 확신하고 잘 감당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지혜와 명철과 같이 필요한 것을 주시고, 직장과 사업안에서의 소명을 확신하고 잘 감당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직장과 사업안에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소명을 주실 때, 맨 땅에 헤딩하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소명을 확신하고, 잘 감당하려 할 때, 우리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 모두는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소명자입니다.
2)그러므로 날마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맡겨진 소명을 잘 감당하고자 해야 합니다.
3)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들이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 모든 것들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분명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소명을 잘 감당함으로 하나님께 칭찬과 상을 받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