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히12:1-2절
제목 : 멀리 바라 봅시다!
1.멀리 보지 않으면
여러분! 자전거를 잘 타는 방법을 아십니까? 어떤 사람은 페달을 힘있게 빨리 밟아야 잘 탄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겁을 내지 말아야 잘 탄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내리막 길에서 중심 잡는 연습을 먼저 해야 잘 탄다고 말하고..., 등 맞습니다. 그런데 자전거를 잘 타는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전거를 탈 때, 코 앞을 보는게 아니라, 조금 멀리 보고 타는 것입니다. 운전 할 때도 코 앞이 아닌 조금 멀리 봐야 잘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도 지금이 아닌 자신의 미래를 멀리 내다 볼 때 공부를 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하기 위해서도 멀리 봐야 합니다. 이렇듯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지금 또는 코 앞이 아닌, 멀리 내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멀리 봐야 하는 것은 세상 일만이 아닙니다. 신앙생활도 코 앞이 아닌, 멀리 내다 볼 때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멀리 내다 보지 않으면 결코 잘 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멀리 내다 보지 못하면 쉽게 힘들고 지칠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쉽게 지치고 힘들때가 언제입니까? 지금, 현재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조금만 더 멀리 내다볼수 있게 되면, 우리안에 기쁨과 평안이 많이 회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멀리 보는 신앙의 안목을 갖어야 합니다.
2.멀리 봐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멀리 내다 보다는 신앙을 안목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코 앞만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멀리 내다 봐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1절을 보면, ‘우리 앞에’ 2절에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주님도 멀리 보셨던 분이라고 말을 합니다. 즉,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멀리, 나중 곧 멀리 내다 볼수 있는 것은 매우 위대한 능력이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통과 부끄러움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멀리 내다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도 롬8장에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수 없도다’ 라고 자신이 멀리 보고 있음을 말하며, 또, 딤후4장에서도,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고 말을 합니다. 또 욥 역시 욥23장에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나오리라’ 고 멀리 바라봄의 위대함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비전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영어사전에서 말하는 비전은 장래의 꿈 정도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오늘 본문이 말하는 비전은 멀리 내다 볼수 있는 능력과 준비입니다.’ 다시말해, 누군가를 볼때나, 어떤 일을 할때나, 교회를 바라볼때 멀리 내다 보는 것입니다. 이런 비전이 있습니까? 기도에도 비전이 있어야 하고, 봉사와 수고를 할때에도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향해서도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격는 고달픈 일들속에도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더나가서 우리 교회를 세워가는 일에도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나중을 볼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럴때 기쁨도 회복되고,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으며,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멀리 볼수 있는, 나중을 볼수 있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때,모든 불안에서 벗어나고, 모든 절망을 딛고 일어날 수 있으며, 좋은 엄마가 될수 있고, 건강한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될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멀리보고 나중을 내다 보는 것이 신앙이고 믿음입니다.
3.예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멀리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멀리 본다는 것은, 막연히 잘될 것이라는 생각, 좋아 질것이라는 생각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멀리 바라 본다는 것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과 그분의 사역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즉, 지금의 문제만이 아닌, 문제를 통해 뭔가를 만드시고, 세우시고, 일하시는 주님을 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도, 교회도 이런 안목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못나고 부족하고 한계가 있는 자신이 아닌, 능치못함이 없으시고, 무한하시며, 특별히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세우시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시는 주님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분을 보지 않고 살아가는 신앙의 근시안이 되면, 여러분은 아무것도 할수 없는 사람이 될것이고, 소망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여러분! 천리안이 뭔지 아십니까? 천리안이라는 것은 천리(400km) 밖의 먼 곳을 보는 눈이라는 뜻입니다. 다시말해, 멀리 내다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신앙의 천리안이 됨으로 신앙의 능력자, 그리고 신앙생활 가운데 기쁨과 소망이 넘치는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