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전9:1-14절 고린도전서 강해22
제목 : 무엇으로 신앙을 증명할 것인가?
성도들의 삶속으로
미국의 41대 대통령인 조지 부시(George Bush)가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서 1학년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강단에서 자신이 미국의 41대 대통령인 조지 부시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지 부시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이들 생각에는 대통령이 학교에 올 리가 없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조지 부시에게 대통령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조지 부시는 자신의 이름이 쓰여진 운전면허증을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조지 부시는 창밖에 대통령 전용 자동차를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결국, 대통령과 함께 간 사람들이 대통령이 맞다고 말하자 비로서 아이들은 믿었다고 합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바울이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의 신앙과 신앙의 수준이 무엇으로 증명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증명 방법
고전9장은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기 위해서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이 사도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 중 상당수가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에 대해서 몇가지 오해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오해를 하고 있었을까요? 3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바울이 우상제물에 대해 자유하지 못하다고 있다고 오해를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바울은 연약한 형제들을 위해서 우상의 고기를 영원히 먹지 않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우상의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아직도 우상 제물에 대해서 자유함을 얻지 못한 사람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특별히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이원론 사상에 의해서 자유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상 제물에 대해 자유하지 못한 사람이 사도일 리가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둘째는, 바울이 돈을 밝히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다른 사도들처럼 교회에서 사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자비량으로 사역을 했습니다. 즉, 스스로 일을 하면서 사역을 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12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사례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뭔가 거리낌이 있다는 증거이고, 더나가서 돈을 번다는 것을 돈을 밝히는 사람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그러기 사도일 리가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셋째는, 바울의 신앙에 일괄성이 없다고 오해를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고전9:20-21절을 보면,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서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라는 바울의 모습을 오해한 것입니다. 즉, 율법주의 자들 앞에서는 율법주의자처럼, 율법이 없는 자에게는 율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일예로, 유대인들이 예수 믿은 후에도 할례를 원한다면 할례를 받으라고 말을 하면서, 이방인들에게는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전9:20-21절을 보면, ‘얻고자 함이라’ 곧 그들의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바울을 볼 때, 신앙의 일관성이 없고, 신앙의 정체성이 불분명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이 사도일 리가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는 점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생각할 것은, 그렇다면,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앙과 신앙의 수준을 무엇으로 증명하고자 했는가?” 에 대해서입니다. 크게 2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첫째는, 자랑거리로 자신들의 신앙을 증명하고 신앙의 수준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자랑하지 말라, 5번 기록) 예를들면,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은 성경적인 지식이 풍부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이 아는 것으로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려고 한 것입니다. 또,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언변 곧 말 재수도 능했습니다. 그 말 재주로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려고 한 것입니다. 또, 은사도 대단히 풍부했습니다. 특별히 방언이라는 은사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고전1:7절) 그래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은사와 방언으로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그들에게는 대단한 신앙의 관심과 신앙의 열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열심을 자랑함으로 자신의 신앙과 신앙의 수준을 증명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처럼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겉모습, 자랑거리를 가지고 신앙을 증명하려고 한것입니다.
둘째는, 남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신앙과 신앙의 수준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우상의 고기문제였습니다.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 중에 신앙이 연약한 사람들은 우상의 고기를 먹을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꺼림직 했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신앙이 수준이 높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들의 모습을 비판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교회 그리스도들 상당수가 방언을 했지만, 방언을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당연합니다. 방언은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신앙의 수준이 높다고 여긴 사람들은 방언을 못하는 사람을 왜 방언도 못하냐고 비판을 했습니다. 이러한 비판의 방식이 자신의 신앙과 신앙의 수준을 증명하는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을 여러 가지로 비난하는 것을 통해서 자신들의 신앙의 수준을 증명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실수를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 역시 자신의 겉모습, 그리고 자랑을 통해서 자신의 신앙과 신앙의 수준을 증명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난 성경을 몇 번 읽었어, 난 하루에 기도를 몇 시간해, 내가 교회를 위해서 이런 일을 했어, 난 방언을 해..., 등 자신을 자랑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 역시 남을 비판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신앙의 수준을 증명하려고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가장 많은 죄를 짓는 것이 있다면, 남은 비판하고 정죄하는 일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남은 비판하면서 자신의 신앙의 수준을 보이려고 하는 실수를 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랑, 비판이라는 방식으로는 신앙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2.바울의 신앙 증명 방법
그렇다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 또는 우리들의 신앙의 수준은 무엇을 증명이 될 수 있을까요?”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무엇으로 증명하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과연 무엇으로 증명하려고 했을까요?
우선 분명한 것은, 바울은 육체적인 자랑거리로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보다 자랑 할 것이 훨씬 더 많았던 사람입니다. 예를들면, 빌3장을 보면, 8일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족속이고, 베냐민 지파이며, 히브리인중 히브리인이며,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건 그 시대에 굉장한 자랑거리입니다. 또, 고후11:23-28절을 보면, 바울은 하나님과 복음을 위해서‘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 뻔 하였으며,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고, 세 번 태장에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강과 강도와 동족과 이방인과 광야와 바다와 거짓형제로 인한 위함을 당했고, 자리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다’ 고 말을 합니다. 이것 역시도 대단한 자랑거리입니다. 그 외에도 바울은 천국에도 다녀온 경험, 죽은자도 살린 경험, 병든자 귀신들린자를 고쳐내는 경험, 주님을 만난 경험, 천사의 도움을 받은 경험, 많은 교회를 세우고...., 등 정말로 누구보다도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런 자랑과 과시라는 방식으로 자신이 사도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방식으로는 신앙은 증명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으로도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바울은 신앙이 연약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품어주었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무엇으로 증명하려고 했습니까? 이것이 가장 중요한 교훈입니다. 먼저, 1절을 보면, ‘주안에서 행한 일이 너희가 아니냐 ’ 2절을 보면, ‘나의 사도됨을 주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을 자신 안에서 찾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럼 자신의 사도됨의 증명을 어디에서 찾고 있습니까? 바로 고린도교회와 그리스도인들안에서 사도됨의 증명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자신으로 인해서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이 얻게된 유익을 근거로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지역에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던 곳입니다. 그런 복음의 불모지에 복음을 전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바울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고린도지역에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자신으로 인해서 누군가가 유익을 얻은 것을 근거로 자신의 사도됨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올바르고 정확한 증명인 것입니다. 이 점은 예수님을 통해서도 확인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야입니다. 그 메시야임을 무엇으로 증명하셨습니까? 자랑과 과시..., 아닙니다.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방식으로 증명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의 신앙의 수준은 내안의 자랑거리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해서 유익을 얻은 사람으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으로 인해서 유익을 얻은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으로 인해서 신앙의 유익을 얻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신앙을 가진 사람이며, 다른 사람들이 얻은 신앙의 유익의 정도가 결국에는 여러분의 신앙의 수준인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을 통해서 누구도 신앙의 유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여러분의 신앙이 올바른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이웃을 통해서 점검되고 증명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올바른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자신의 신앙을 누군가에게 유익을 주는 삶으로 증명하고,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애타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자신의 신앙의 증명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방식으로 증명된다는 점을 묵상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삶’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살수 있을까요? 서로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살수 있었던 것은, 바울의 마음속에 누군가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후11:28-29절을 다함께 보도록 합시다. ‘아직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그렇습니다. 바울은 늘 교회를 향해, 성도들을 향해 애타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누군가의 유익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교회를 향해서, 성도들을 향해서, 누군가를 향해서 ‘애타는 마음’ 이 있습니까? 이런 마음이 있어야 신자다운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꼭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울의 마음이며, 주님의 마음이며, 우리 그리스도인이 품어야 할 마음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들이 신앙을 가진 사람임을 세상에서 증명하기를 원하십니다.
본문과 삶
1)그러나 자랑과 비판이라는 방식으로는 신앙이 증명되지 않습니다.
2)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방식으로 신앙이 증명됩니다.
3)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향해서 애타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유익을 끼침으로 신앙을 증명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