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i TV > 설교말씀 > 하나도 알고 둘도 아는 그리스도인! (고전강해20)
HOME 로그인회원가입
교회안내 설교말씀 목장 및 양육 선교사역 부서소개 사랑방

  사랑 i TV  
     설교말씀 
     찬양영상 
     행사영상 
     성가대찬양 
     찬양소개 
     QT영상 





설교말씀
    > 설교말씀 >>  수요설교
 
[수요설교] 하나도 알고 둘도 아는 그리스도인! (고전강해20)
 본문말씀 : 고전8:1-13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4.9.10
조회 : 7,779   추천 : 0  
본문 : 고전8:1-13절  고린도전서강해20
제목 : 하나도 알고 둘도 아는 그리스도인!   

  성도들의 삶속으로
 우리나라 말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음식을 남기면 안된니까 억지로라도 다 먹으라고 말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맞습니다. 음식을 남기면 안됩니다. 옳은 일입니다. 하지만,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고 억지로 먹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배탈이 납니다. 이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경우에,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는 말을 합니다. 헛똑똑이 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던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가 하나도 알도, 둘도 아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올바른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이라고 시작을 합니다. 이 말은 고린도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에게 우상의 제물에 대한 질문을 했다는 것입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진 고기를 먹어도 되는지? 아니면 어떤 경우에라도 우상 제물은 먹어서는 안되는가? 에 대한 질문을 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질문을 했냐면, 당시 고린도 도시에 유통되는 모든 고기들이 우상신전에서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진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의견이 나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우상을 버리고 개종한지 얼마 안된 신앙이 연약한 부류의 사람들은 결코 먹어서는 안된다고 여겼고 우상의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앙이 좋다고 여긴 부류의 그리스도인들은 당당하게 우상의 고기를 먹으면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며, 우상의 고기를 먹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의견을 묻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울의 입장이라면 무엇이라고 답변해 주시겠습니까? 또는, 만일 누가 여러분에게 제사음식을 갖다 주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음식을 먹겠습니까? 아니면 버리시겠습니까? 바울의 답변은 우상의 고기라 할지라도 ‘먹어도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먹고 안먹고의 문제를 자기 입장에서 결정하지 말고, ‘이웃의 입장’ ‘이웃 사랑의 입장’ 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바울의 결론입니다.

 우선 우리들이 첫 번째 생각할 것은, 본문 1절입니다. 보면, ‘우상의 제물에 대해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우상에 대한 ‘성경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4절을 보면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세상에는 수천 수만의 신이라 불리우는 것들이 많지만 사실은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하나님 말고 다른 신이 없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에게 드려진 고기를 먹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단지 고기 일뿐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린도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의 문제에 대해서,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 더나가서 성경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13:2절에 ‘모든 지식을 알고’ 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도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과 같은 ‘올바른 성경적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시는지?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죄란 무엇인지? 기도가 무엇인지? 성령이 무엇인지? 교회가 무엇인지? 천국이 어떤 곳인지? 에 대한 성경적인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분별할 수 있고, 이단의 속임수에도 넘어가지 않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우리들은 올바르고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성경적인 지식이 없으면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대해서 너무나 많이 모릅니다. 그래서 무엇이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지도 구별하지 못하고, 어느쪽이 하나님의 뜻인지도 모르고, 이단이 와서 거짓을 말해도 쉽게 속아 넘어가거나 아무 말도 못하고 맙니다. 이 모든 것이 성경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호세아 선지자는 호4:6절에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경에 대한 지식을 갖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경적인 지식을 갖을 수 있을까요? 매일 매일 열심히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혼자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 성경의 지식과 성경적 가치관을 갖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사모하는 마음으로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그 외에도 좋은 기독교 서적을 읽는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처럼 성경을 잘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2.더욱 사랑으로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했습니다. 특별히 존재하지 않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 역시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문제 되지 않는다고 인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13절을 보면, 바울은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을 합니다. 먹어도 된다고 말한 바울이 자신은 안 먹겠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상의 제물을 먹는게 찜찜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건강상의 이유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바울이 고기를 영원히 먹지 않겠다는 결정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들 곧 성도들을 위한 결정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고기를 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고기를 먹는 문제의 결정을 자신이 아닌, 이웃의 입장해서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아주 중요한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지식을 갖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사랑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9-12절에 반복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것이 자신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만일 어떤 누구라도 그로 인해 마음의 어려움을 격게 하거나, 죄를 짓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의 고기를 먹는 일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지식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자신들로 인해서 신앙이 약한 사람들이, 마음의 어려움을 겪게 하고, 죄를 짓게 한다는 사실까지 몰랐던 것입니다. 즉, 옳고 그름만 알았지, 이웃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가는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즉,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시, 여러분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아닙니까? 다시말해, 옳고 그름만을 따지다가 사랑을 놓치지는 않습니까? 사실 이런 경우가 참 많습니다. 예를들면, 부부싸움을 할 때 그렇습니다. 부부 싸움을 하다 보면 옳고 그름을 따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놓치고 상처와 아픔만 남길 때가 참 많습니다. 또, 우리들이 어떤 성도의 실수를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옳고 그름을 쉽게 비판합니다. 그러나 비판뿐이고 사랑이 발휘되지 않을 때가 참 많습니다. 봉사의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일 하는게 효율적이고 좋은 것인지는 알지만 그것 때문에 사랑이 뒷전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식을 갖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더욱 바라는 것은 여러분이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즉, 옳고 그름을 기준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사랑이 기준이 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보통 죄를 옳고 그름으로 이해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지 죄를 옳고 그름으로만 말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들면, 우상의 고기를 먹는 것은 성경적 지식으로 보면 죄가 아닙니다. 그런데 12절을 보면,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상의 고기를 먹는 일로 인해서 누군가가 상처를 받고, 시험을 받게 된다면, 우상의 고기를 먹는 것은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우상의 고기와 같은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아마 술과 담배일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술과 담배를 하는 것은 죄라고 말할까요? 아닙니다. 담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것을 죄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잠23:31절에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또는 엡5:18절에 ‘술취하지 말라’ 를 근거로 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술과 담배를 죄라고 주장하는 공통된 근거를 고전3:16절에 ‘너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다’라는 말씀을 근거로 말을 합니다. 그래서 정말 술과 담배가 죄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성전으로서 여러분이 과로, 불량식품을 먹는 것, 운동하지 않는 것, 병에 걸리는 것도 다 죄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술과 담배 자체를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술과 담배를 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일일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술과 담배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신앙의 지식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식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랑을 가지고, 사랑을 따라 살아가는, 하나도 알고 둘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3.공동체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들이 알아야 할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 12,13절을 보면, 바울은 ‘형제’ 라는 말을 합니다. 이 표현은 공동체의 또다른 표현입니다. 즉, 바울은 공동체를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동체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크게 2가지입니다. 첫째는, 공동체 안에서 우리들의 신앙의 유익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기러기가 V자 대형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신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혼자 비행을 할때보다 71%나 더 오래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홀로 신앙이 성장 할 수 없습니다. 함께 할 때, 신앙이 성장하고 유익을 얻게 됩니다. 고전3:9절에 보면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라고 말을 합니다. 바로 신자들이 모여 있는 교회 공동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교회 공동체안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뿌리가 내려지게 되는 것이며, 교회안에서 믿음의 싹이 나며, 교회에서 믿음이 성장하고, 교회안에서 믿음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는 공동체를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사랑을 표현하실 때, 거의 대부분은 공동체를 통해서 표현하십니다. 또한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기도제목에 응답하실때도,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실 때에도, 여러분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실 때에도, 그리고 여러분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실 때에도 거의 대부분은 공동체의 일원들인 각 성도와 교회를 통해서 그런 일을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간혹,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나와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이렇게 말할수 있는 경우는 2가지 경우입니다. 첫째는, 구원을 설명할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누가 대신 받게 해줄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속에서 받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심판입니다. 심판 역시 누군가가 대신 받아 줄수 있는게 아닙니다. 이 2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를 생각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신앙의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공동체 안에서 신앙의 성숙과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러면 안됩니다.
 본문과 삶
  1)성경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알아야 합니다.
  2)그러나 지식보다 사랑이 우선이고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3)공동체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이 하나도 알고, 둘 셋도 아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Share

 
 

번호 말씀제목 보기 본문말씀 설교자 설교일자 조회 추천
2533 [주일설교] 다시 걷기-변화된 삶으로   롬12:1-2절 최용민목사 2026.4.5 39 0
2532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롬12:1-2절 최용민목사 2026.4.5 6 0
2531 [특별새벽기도] 소망하기!(고난주간5) 롬8:18-25절 최용민목사 2026.4.3 42 0
2530 [특별새벽기도] 사랑하기!(고난주간4) 롬5:6-11절 최용민목사 2026.4.2 609 0
2529 [특별새벽기도] 한 걸음 내 딛기!(고난주간3) 잠16:1-9절 최용민목사 2026.4.1 486 0
2528 [특별새벽기도] 방향 묻기!(고난주간2) 시119:57-64절) 최용민목사 2026.3.31 657 0
2527 [특별새벽기도] 기억하라!(고난주간1) 시77:1-12절 최용민목사 2026.3.30 349 0
2526 [주일설교] 거룩한 멈춤! 집중!(고난주간) 시46:1-11절 최용민목사 2026.3.29 3580 0
2525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시46:1-11절 최용민목사 2026.3.29 110 0
2524 [수요설교] 다시 세워진 신앙!(사사기강해15) 삿6:25-32절 임승철목사 2026.3.26 2142 0
2523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삿6:25-32절 임승철목사 2026.3.25 107 0
2522 [주일설교] 신앙 성장과 습관(習慣)!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2306 0
2521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115 0
2520 [주일설교] 주일2부실시간예배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158 0
2519 [수요설교] 원칙(原則)이 있는 신앙!(사도행전강해96) 행17:1-9절 최용민목사 2026.3.18 185 0
2518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행17:1-9절 최용민목사 2026.3.18 227 0
2517 [주일설교] 신앙 성장과 결단! 왕하5:15-19절 최용민목사 2026.3.15 363 0
2516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왕하5:15-19절 최용민목사 2026.3.15 176 0
2515 [수요설교] 위로받고 위로하고!(사도행전강해96) 행16:35-40절 최용민목사 2026.3.11 154 0
2514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행16:35-40절 최용민목사 2026.3.11 252 0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