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왕하5:15-27절 열왕기하 강해7
제목 : 계속 신앙이 성장해야 합니다!
들어가는 말
우리들이 살다보면, 인생에 많은 문제를 끊임없이 만나게 됩니다. 예를들면, 부부사이의 문제, 자녀의 문제, 물질의 문제, 건강상의 문제,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제, 감정의 문제, 다양한 현실의 문제..., 등 그리고 그런 문제들로 인해서 우리들은 힘들어 하고, 지치고, 괴로워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우리들이 다양한 문제로 힘들어 하는 이유가, 단지 지금 내가 만난 그 문제로 인한 것이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들이 어떤 문제 앞에 힘들고 지친다는 것은, 내가 그 문제보다 더 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우리들이 똑같은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떨때는 웃으면서 이겨내지만, 어떨 때는 웃음을 잃고 넘어져 버릴때도 있습니다. 더 쉽게 말하면, 누군가에게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떨때는 웃으면서 넘기지만, 어떨때는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힘들고 지치는 이유가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에 있는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점입니다. 즉, 우리가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보다 더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의 유혹을 받고, 시험을 당할 때 넘어지고 쓰러지는 이유가 죄와 시험 때문이 아니라, 죄와 시험을 이길만큼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신앙이 더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항상 성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은 믿음은 갖게되었지만, 그 믿음이 성장하지 못한 나아만 장군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믿음을 가졌다는 증명이 무엇이며, 신앙이 성장해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여러분의 신앙이 날마다 성장해 가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계속 성장하지 못한 나아만
오늘 본문은 나병에서 고침받은 나아만장군이 엘리사에게 신앙을 고백과 엘리사의 제자이며, 사환인 게하시의 잘못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15절을 보면, 나아만장군이 엘리사에게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오직 하나님만이 참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런 후 17절을 보면,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에게 이스라엘 땅의 흙을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도 이스라엘 사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증거물로 삼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엇이라고 말을 합니까?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참 놀라운 고백입니다. 그러면서 18절을 보면, 엘리사에게 한가지 양해를 구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위치가 아람왕을 보좌하는 위치이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라도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달라는 것입니다. 용서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나아만장군은 아람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제자인 게하시가 탐욕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23절을 보면, 고국으로 돌아가는 나아만 장군을 뒤쫓아가 거짓말로, 은 두달란트와 옷 두벌을 받아 자신의 집에 감추게 됩니다. 그러나 이 일을 엘리사가 알게 되고, 결국, 나아만 장군의 나병이 게하시에게 발병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묵상해야 할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나아만장군에게 믿음이 생겼다" 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조금 전에 살펴본 대로, 15절의 고백이나, 17절의 모습, 그리고 18절에 엘리사에게 양해를 구하는 모습을 보면, 틀림없이 나아만 장군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분명한 그리고 진실한 믿음이 생겼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발견되는 나아만 장군의 문제점은 ‘더 이상 믿음이 성장하지 않았다’또는, ‘계속 성장하기를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분명히 나아만장군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18절을 보면,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에게 용서와 양해를 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즉, ‘내 주인께서 림먼의 산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산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산당에서 몸을 굽힐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부탁을 합니다. 여기서 알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아만장군이 믿음을 가졌지만, 또, 우상을 숭배한다는 것이 잘못이며, 하지 말아야 할 일임을 알지만, 그의 신분, 그의 위치상 림몬신상에 몸을 굽힐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초신자인 나아만장군에게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 본문만을 놓고 볼때, 나아만은 지금 가진 그 믿음에 멈춰선 것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또 한사람인 엘리사의 제자이며 사환인 게하시의 모습을 통해서도 그가 가진 믿음의 수준에 멈추어서 있고 성장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믿음이 더 자라가질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여러분이 나아만은 아닙니까? 초신자의 신앙의 자리에 계속 멈춰서 있지는 않습니까? 또는 게하시처럼 어느 정도 신앙이 자라긴 했지만, 그 자리에 오래도록 멈춰서서 더 이상 신앙이 자라지 않고 있지는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지금 여러분의 신앙이 계속해서 자라가고 있느냐? 더 좋아지고 있느냐? 더 성숙해지고 있느냐? 의 문제입니다. 어떻습니까? 성장하고 있습니까? 자라고 있습니까? 그럼 생각해보십시다. 여러분은 지난 1년전과 비교했을때, 신앙이 자라셨습니까?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큐티와 기도의 깊이가 깊어지셨습니까? 더 낮아진 자세로 사람들을 섬기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배우자에게 더 잘하고 계십니까? 혹시, 신앙의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1년을 5번, 10번, 20번, 30번을 반복하는 식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계속 자라가야 합니다.
그 자리에 멈춰서 있으면 안됩니다. 계속해서 성장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성장해 가야 합니다. 왜냐고요! 그게 주님의 뜻이기고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즉, 엡4:13절을 보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들의 신앙이 계속해서 자라야할 이유는, 여러분의 신앙과 믿음이 더 성장하고 자라갈 때, 여러분의 삶이 더 평안하고, 복되고, 안전하고 자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성경은 신앙을 갖고, 성장하는 것을 집을 짓는 비유로 가끔 소개합니다. 즉, 우리들이 믿음을 갖게 된것을 집의 기초를 둔것이고, 신앙이 자라가는 것을 집을 세워가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예를들면, 신앙이 자라가는 것을 기둥을 세우고, 벽을 쌓고, 문과 창문도 만들고, 지붕도 만들고, 인테리어를 하는 것으로 말을 합니다. 여러분! 어떤 집에 살아가는게 평안하고 안전할까요? 기초만 있는 집, 겨우 벽만 있는 집, 다 지어진 집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날마다 신앙이 자라가야 하고, 신앙의 집을 세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신앙이 자라가기를 소망하십시오! 신앙이 성장해 가기를 노력하십시오!
2.선택과 거절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아만의 믿음과 신앙이 계속 성장할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거절해야 할지를 분명히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는 분명히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모습인가도 잘 알았습니다. 그러니 엘리사에게 양해와 용서를 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의 선택, 또는 거절을 제대로 못한 것입니다. 다시 18절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분명히 갖었고,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 것을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을 선택하지 않고, 또, 림몬의 우상에게 절하는 일을 거절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가 선택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만 섬기는 삶이 아니라, 왕의 마음에 들고, 계속해서 자신의 위치를 지킬 수 있는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반대로, 그는 하나님 백성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거절을 할 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 결과, 나아만은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지만, 그 믿음과 그의 신앙이 더 나아지지는 못했습니다. 왭니까? 올바른 선택과 거절을 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이 탁월했던 사람들의 한결같은 모습을 보면, 모두가 하나님 백성으로서 선택할것과 거절할 것을 분명히 했다는 점을 알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모세는 애굽왕자의 삶을 거절하고 하나님 백성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또, 에녹은 세상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기를 거절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또, 요셉은 보디발장군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고 하나님 백성다운 삶을 선택했습니다. 또, 나오미의 며느리 롯은 남편이 죽은후 이방인으로의 삶을 거절하고 그의 시어미와 함께 하나님 백성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또, 바울은 미래가 보장된 유대교신자의 삶을 거절하고, 주님의 증인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또, 믿음의 주이신 예수님은, 돌을 떡덩이 되게 하라, 뛰어내리라, 내게 절하라는 사단의 요구를 거절하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잘못된 선택, 거절 할것을 거절하지 못함으로 낭패를 본 사람들도 나옵니다. 누구입니까? 아담과 하와입니다. 그들은 사단의 유혹을 거절해야 하는데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또, 가룟유다입니다. 그는 유대지도자들이 돈을 주며 예수를 넘기라는 제안을 거절해야 하는데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또,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게하시입니다. 그는 나아만에게 돈과 값진것을 받아내라는 마음의 제안을 거절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그 외에도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거절해야 하는 것을 거절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결국, 신앙이 자라기 위해서는 반드시, 올바른 선택과 분명한 거절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과 거절이 결국에는, 우리의 신앙의 자람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늘 고민해야 합니다. 무엇이 그리스도인다운 선택이고, 그리스도인으로 거절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신앙이 성장해 갈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택과 거절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성경이 선택과 기준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선택하고, 성경이 우리에게 피하라고 하는 것은 거절해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몰라서 걱정인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더 간단한 기준을 알려 드립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쪽을 선택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일은 거절’ 하십시오! 그럴 때 그리스도인다운 선택과 거절이 될 것입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기준으로 선택하십시오!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쪽을 선택하십시오! 예를들면, 바울이 고기를 먹느냐 안먹느냐의 선택의 기로에 놓여을 때, 그는 안먹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믿음이 연약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유익을 위함이었습니다. 반대로 누군가에게 유익이 아닌 해를 준다면 여러분에게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우리의 선택과 거절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까지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과 거절을 하셨습니까? 지난 시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시겠습니까? 성경의 요구, 하나님의 기쁨, 이웃의 유익, 하나님과 이웃 사랑이 선택과 기준으로 삼고 용기 있는 선택과 거절이 있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신앙은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3.욕심때문입니다.
그러면, 나아만 장군은 왜 올바른 선택, 마땅한 거절을 하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그에게 있는 욕심 때문입니다. 어떤 욕심이겠습니까? 아람나라의 2인자의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욕심, 계속해서 왕의 신임을 받고자 하는 욕심, 많은 것을 잃고 싶지 않은 욕심..., 등일 것입니다. 이런 욕심이 나아만 장군으로 하여금 올바른 선택과 마땅한 거절을 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게하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게하시는 엘리사의 제자이며 사환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나아만을 따라가 은과 옷을 받고자 거짓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욕심때문입니다. 욕심 때문에 게하시는 선지생도 다울수 없고, 더 신앙이 자랄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 욕심 때문에 신앙에 문제를 격은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예를들면, 아담과 하와, 롯의 처, 요셉의 형들, 사울왕, 여로보암, 하만, 가룟유다, 바리새인들..., 등입니다.
그렇습니다. 욕심이 항상 문제입니다. 부부들이 싸우는 것도 욕심때문이고, 죄짓는 것도 욕심때문이고, 서로 미워하고 다투는 것도, 교만한 것도, 스스로를 불행하게 하는 것도 욕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극작가인 셰익스피어는 욕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랑에는 눈물이 있고, 행운에는 기쁨이 있고, 용맹에는 명예가 있다. 그러나 욕심에는 죽음이 있다.’고 말입니다. 사실 이것은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약1:15절에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욕심은 반드시 문제를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욕심 때문에 우리들의 신앙이 자라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신앙이 자라가길 원한다면, 욕심을 이겨야 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을 말할 때 성경은, 갈5:24절에서 ‘욕심을 십자가 못밖은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많은 본문에서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을 말할 때 “욕심”을 기준으로 말한다는 사실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내용입니다. 물론, 우리들이 욕심이 생기는 것조차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욕심을 이루는 일은 우리들이 마땅히 거절해야 합니다. 그럴 때 신앙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하나님은 우리들이 계속해서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지금의 신앙의 자리에 멈춰서 신앙의 제자리 걸음을 합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욕심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올바른 마땅한 선택과 마땅한 거절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이웃의 유익 곧 하나님과 이웃 사랑을 선택과 거절 기준으로 삼고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신앙이 더 더욱 성장하고, 더 큰 자유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올 한해 더 더욱 신앙이 성장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