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왕하2:12-25절 열왕기하 강해3
제목 : 인정받는 그리스도인!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살면서 누군가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신적이 있습니까? 누구를 만나보고 싶으십니가? 스승, 친구, 만날 수 없게 된 가족..., 등 저 역시도 요즘 누군가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참 많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인다운 신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면서, 저 사람은 정말 그리스도인다운 사람이라고 여겨질 만한 신자는 몇 명이나 만나보셨습니까? 10명 쯤은 됩니까? 아니면 아직 한번도 만나보지 못하셨습니다. 꼭 만날 수 있기 바랍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스도인다운 신자를 만나보기 어려운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특별히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신자들 중에는 그리스도인다운 신자들이 참 많았습니다. 예를들면, 몇 년 전에 1919년 3·1 독립운동에 관한 일본 헌병대 일지가 발견되었습니다. 다음은 무라카미 헌병대장과 부하인 다나카의 대화 내용입니다. ‘이번 폭동은 조선 야소교인들이 주도해서 생긴 일이니 주동자를 색출해서 잡아들여야 한다. 그들에게 예수를 믿는지 먼저 물어보고 믿는다고 하면 무조건 잡아들여라.’이 말을 들은 부하가 말하기를 ‘믿으면서, 안 믿는다고 거짓말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 말은 들은 헌병대장이 ‘조선 야소교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이 사례들을 보면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받았다는 점을 알수 있습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사람들에게 그리고 하나님에게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받는 엘리사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가 누구에게나, 특별히 하나님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당신은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입니까?
오늘 본문은 엘리야가 승천한 직후 엘리사에게 있었던 3가지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합니다. 첫째로, 15절을 보면, 엘리사의 능력을 본, 여리고의 선지생도들이 엘리사를 엘리야의 후계자로 인정하게 됩니다. 둘째로, 19절을 보면, 여리고 성읍에 사는 사람들이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그 이유는 여리고 지역에 토양은 좋은데 물(수질)이 좋지 않아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떨어버리니까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그때 엘리사는 소금을 통해 물을 고치게 됩니다. 그후 엘리사는 여리고를 떠나 벧엘로 갔습니다. 그런데 23절을 보면, 엘리사가 벧엘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살던 작은 아이들이 엘리사에게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조롱을 합니다. 그리고 셋째로, 엘리사를 조롱하던 그 아이들이 곰에 물려 42명이 죽게 됩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보면, 엘리사가 너무 무자비하고, 대머리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처럼 보이고, 예민하고, 유치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42명이 곰에 의해 물려 죽은 그 사건 이면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점을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우선, 레26:22절을 보면, 짐승에 의해 자녀와 가축이 죽게 되는 것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또, 벧엘이 어떤 곳입니다. 여로보암왕이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금송아지를 세우 곳입니다. 그리고 레위사람이 아닌자들을 제사장으로 삼아 세운 곳입니다. 또, 아합왕 시대에 하나님이 저주하시고, 재건을 금하신 여리고성을 재건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벧엘사람 히엘이라는 사람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의 대머리 사건은, 엘리사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벧엘 사람들의 불신앙에 대한 심판으로 내려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25절을 보면, 엘리사는 갈멜산을 거쳐 다시 사마리아로 돌아갑니다. 이게 오늘 우리들이 묵상해야 할 내용입니다.
여러분! 본문이 우리들에게 교훈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만일 목사라면 무엇을 설교하시겠습니까? 기적을 행한 엘리사에 대해서 입니까?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엘리사가 사람들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인정받았다”라는 점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에 소개된 내용을 생각해보십시다. 먼저 15절을 보면, 성령의 역사가 엘리사에게 임한 것을 본, 여리고에 사는 선지생들이 엘리사 앞에서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엘리사를 엘리야의 후계자로 하나님의 선지자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또, 22절을 보면, 엘리사가 여리고 성읍의 사람들의 요청하고, 엘리야는 여리고의 물을 고쳐주게 됩니다. 그로 인해 틀림없이 여리고 사람들에게 엘리사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인정을 받았을 것입니다. 또, 24절을 보면,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조롱한 42명의 아이들이 죽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엘리야의 후계자로서, 그리고 자신이 세운 자신의 종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해주시는 장면인 것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엘리사가 사람들에게, 그리고 하나님에게 선지자로서 인정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사가 사람들과 하나님에게 선지자로서 인정받은 사실을 우리들에게 소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들 역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고 하나님께도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말씀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먼저, 여러분은 하나님께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을 받고 있으십니까? 잘 모르시겠습니까? 그럴겁니다. 하나님이 말씀해 주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요! 그러면, 여러분이 하나님께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받고 있는가? 를 점검해 보십시다! 어떻게 점검하냐고요? 간단합니다. 그것은 지금 여러분이 여러분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받고 있는가? 를 확인하면 됩니다. 이런 점검방법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경의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을 상호 증명의 관계로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증명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사랑하지만, 이웃은 안 사랑하는 것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18:18절에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인가를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러분 주변 사람들이 여러분을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하는가? 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즉, 여러분 주변 사람들, 여러분을 알고 지내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말은 다 믿어줍니까? 여러분을 법 없이도 살 사람으로 여겨줍니까? 여러분이 하는 일은 다 좋은 일로 여깁니까? 적어도 여러분을 ‘그 사람은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야’라고 알아야 줍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네가 뭐 신자야라는 핀잔을 들으며 살지는 않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도리어 핀잔만 듣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하나님께도 인정받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일 확률이 높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우리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답다고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엘리사처럼, 그리고 요셉처럼(보디발장군의 집, 감옥, 바로왕에게 인정받음), 그리고 다니엘처럼(이방나라 왕인 느브갓네살, 벨사살, 다리오왕에게 인정받음), 또, 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처럼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여러분의 남편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받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아내에게 인정받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자녀에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남여친구에게, 직장 동료에게, 거래처 사람들에게,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인답다고 인정을 받고 있습니까?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말뿐인 모습
그렇다면, 우리들이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칭찬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들이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여리고에 사는 선지생도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어떤 모습입니까? 그들의 스승이었던 엘리야의 시신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이 말만 보면, 아직 배우고 있는 신학생이니..., 라는 이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5절을 보면, 이들은 이미 자신들의 입으로 엘리야가 승천할 것이라고 엘리사에게 먼저 말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의 입으로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승천하게 하실 것이라고, 데려가실 것이라고 말을 한 사람들이 이제 와서는 엘리야의 시신을 찾자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지금 말과 행동이 다른 것입니다. 언행불일치, 또는 신행불일치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언행불일치, 또는 신행불일치의 삶을 살아가기에,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리 때문이거나, 주장 때문이 아닙니다. 하는 말은 다 맞고, 옳은데, 말뿐이라는 것입니다. 즉, 말은 대단하지만 삶은 엉망진창이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자신들과 다를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입니다. 교회생활을 아주 열심히 하는 여집사님이 있었습니다. 늘 성경도 열심히 읽고, 기도로 열심히 하고, 예배도 열심히 드리는 집사님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남편이 교회에 다니지 않습니다. 그러나 워낙 착한 남편이라 아내가 말하면, 한달에 한번정도는 교회에 따라 나갔다고 합니다. 물론, 교회 가면 늘 졸기만 합니다. 그러던 중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 부흥회를 한다고 해서 남을 이끌고 부흥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여집사님은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남편은 여전히 졸기만 하다 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여집사님이 가장 앞자리에 앉으면 남편이 졸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다음날은 가장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또 졸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화가난 아내는 남편에게 난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당신은 왜 은혜를 못받냐고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자신이 졸은 일이 미안해서 웃으면서, ‘은혜 받으면 뭐가 좋은데...,’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당신이 받은게 은혜라면 난 별로 바라지 않아!’ 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말로는 은혜를 말하지만, 행동에는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편이 은혜 받고 싶은 마음이 들겠습니까? 결국, 말뿐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지적하는 이야기이며, 그런 그리스도인은 인정받을수 없다는 것을 교훈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될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우리들이 배운대로, 아는대로, 그리고 믿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말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다시말해,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용서하시는 분이라고 말을 합니다. 기쁨을 주시고, 위로하시는 분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실상 우리의 삶을 보면, 사랑이 없고, 용서할줄 모르고, 기쁨이 없고, 소망이 없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이렇게 말과 행동이 다르니 어떻게 여러분 주변 사람들이 여러분을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할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는게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아는 대로, 믿는 대로, 말하는 대로, 성경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될수 있습니다.
3.비난하는 모습 때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또 한가지 이유를 찾을수 있습니다. 23절을 보십시다. 보시면, 벧엘의 어린 아이들이 하나님의 종인 엘리사를 보고, ‘대머리여 올라가라’ 고 조롱과 비난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벧엘의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바로 우리의 모습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너무나 쉽게 그리고 빈번히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험담하고, 정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누구도 비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비난하고 정죄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죄없는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속에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누구도 남을 비난하고 정죄할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들이 누군가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은 자신의 못난 것을 숨기기 위한 위장전술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안에 잘못이 많고, 감출 것이 많은 사람이 누군가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일을 많이 하게 됩니다. 왜요? 그렇게 함으로 자신이 옳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보이기 위함인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랬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누군가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잘못된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모습을 보면, 누구도 우리를 그리스도인답다고 인정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비난하는 그 사람이 누구인가? 를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실 수밖에 없도록 만든 사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그렇게 쉽게 그리고 함부로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할 수 없고,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잘못인가를 알것입니다.
특별히 여러분이 비난하지 말아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운 리더들입니다. 우리 교회로 말한다면, 목사이고, 직분자이고, 목자들입니다. 아무리 부족하고 못나도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그 일을 맡기신 분, 권세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 했지만, 그리고 사울왕을 죽일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운 왕이고, 따라서 하나님이 책임질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 비난하면 안되는 이유는, 비난을 하게 되면 영적인 유익, 신앙적인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여러분이 저를 비난한다면 제 설교에 은혜를 받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운 리더들을 비난하지 말고, 사랑하고, 세워줄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피차간에 은혜가 되고 덕이 되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이든, 비난하고 정죄하는 사람이 아닌, 감싸주고, 품어주고, 용납해주고, 기다려주고, 참아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때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될수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우리는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 되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에게, 그리고 그 증명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배우고, 알고, 믿고, 말하고 고백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세운 사람들을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사랑하고, 이해하고, 품어주고, 세워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